시사인터뷰

 

    

 
 
 

 

 

기획포커스컬럼

 

커버스토리

 

정치경제 문화
교육예술사회

 

서울부산인천
대구광주울산
대전충남충북
전남전북경남
경북강원경기
제주

 

CEO인사말조직도
인사찾아오시는 길
공지사항

 

 

   커버스토리

 
작성일 : 11-06-07 11:23
김용진 (사)한국음악협회 이사장·한양대학교 음악대학 명예교수·前 세종문화회관 사장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657  

거시적 안목 지닌 이 시대 진정한 마에스트로

서양음악 전공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한국음악협회’에 국악계 인물이 이사장으로 추대되는 이변이 연출됐다. 그 이변의 중심에 김용진 이사장이 있다. 서양음악과 국악을 아우르는 카리스마를 지닌 그는 음악계의 거장으로, 올곧은 신념을 겸비한 교육자로 활발한 활동들을 이어왔다. 예술계의 전반적인 경영을 책임지는 탁월한 행정력과 추진력까지 두루 갖춘 그의 거침없는 행보들은 수많은 업적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며 다시 한 번 그를 이 시대의 진정한 마에스트로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 음악계를 이끄는 힘

김용진 이사장은 음악인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음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협회장에 오르고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음악 행정에 경영기법을 도입해 전국에 방만하게 널려 있는 지부의 구조 조정을 단행하고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음악인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오던 ‘한국음악협회’를 전국적으로 15개 지회와 87개의 지부 그리고 100여 개의 산하단체를 가진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전국을 하나의 협회로 엮은 그의 결단력이 빛을 발한 눈부신 성과였다.

작곡자,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과 KBS국악관현악단 등 우리나라 대표 연주단체의 상임지휘자를 두루 역임, 철저하면서도 예리한 음악적 해석과 단체를 이끌어 가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인해 짧은 시간에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높이는 지휘계의 마술사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로인해 많은 지방 관현악단의 초청을 받아 객원지휘를 맡기도 했던 그의 사전에 ‘적당히’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다듬어지지 않는 부분들을 차근차근 고쳐나가는 음악적 근성을 지녔으며 개인의 소리를 전체로 아우르는 음악 조련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또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정확한 곡 해석은 “김용진 이사장이 지나간 오케스트라는 소리가 바뀐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우리나라 관현악단의 발전과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음악가로서의 삶과 더불어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교육자였던 그는 당시 탁월한 행정력을 인정받아 음악대학 학장과 교육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정년과 동시에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발탁, 공적을 쌓은 바 있다.









예술문화와 함께한 50여년의 인생을 반추하다

김용진 이사장은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대구초등학교와 계성중·고등학교까지 유학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제1기로 입학했다. 대학교 재학 당시에는 국립국악원 주최 5·16기념 국악콩쿠르에서 당선했고 ROTC 1기로 육군 소위로 임관 후 예편했다. 그는 국악고등학교 강사를 시작으로 서울교육대학 강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강사, 경기중·고등학교 강사, 진명여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72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개설되면서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한양대학교에 재직하면서 1981년, 음악대학장을 세 차례 연임하고 교육대학원장의 보직을 맡아 역시 두 차례 연임했던 그는 2004년 9월, 32년간의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서의 정년을 맞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평소 교수로서의 권위의식보다는 봉사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한 ‘애지실천(愛之實踐)’의 근학이념을 토대로 교육과 행정을 맡아온 김용진 이사장. 그가 많은 학생들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고 한다. ‘첫째, 1st 아닌 Only가 돼라. 둘째, 창의성을 길러라. 셋째, 미래 이력서를 써라. 넷째,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해라.’ 이것은 그가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들이 인성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최상의 상품성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지도하기 위함이라고.

그는 1년에 한 명의 교수를 배출하겠다는 목표 아래 후학을 양성해 왔다. 현재 37명의 제자를 교수로 배출시킨 그는 교육자로서의 사명에 충분히 부합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그를 따르는 수많은 수식어들은 그가 음악인으로서, 교육자로서, 행정가로서 자신의 인생을 남김없이 다 바쳤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멀리, 보다 웅장하게 자신의 삶을 연주하고 있는 김용진 이사장, 어찌 타고난 음악인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노경빈 기자 atnk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