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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작성일 : 11-01-12 10:59
의료기기 회사 ‘닥터킴’ 김기천 대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960  



‘의사, 발명가, 이젠 사업가!’무영헤드램프로 의료기 시장의 강자로 우뚝

김기천 대표는 기계공학과 의학을 전공, 10년간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며 의사로서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용 헤드램프를 개발, 사업화에 성공한 의사출신 사업가이다. 2002년 무영 헤드램프를 특허출원했고, 창업이후 매년 100% 매출신장과 10여개국 수출이라는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다. 그가 의사 직함을 버리고 의료기 생산에 들어서게 된 계기와 사업 시작 5년 만에 무영헤드램프 국내 및 해외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지 그에게 들어보았다.



세계 최초 개발 ‘무영헤드램프’

김기천 대표는 업계에서 의사출신CEO로 유명하다. 2005년까지 개원의사로 환자를 진료하던 그가 의료기기 제조업에 뛰어든 것은 2006년, 그의 나이 48세 때의 일이다. 늦깍이 창업이었던것은 물론 당시 국내에서 제조업을 창업하여 성공한다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확률만큼이나 어려운 현실 속에서 창업 후 매년 100%의 매출신장과 수출시장개척 3년 만에 10여 개국의 선진국에 의료기기를 수출하는 쾌거를 이룩하고 있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성과다. 이러한 성공 뒤에는 본인의 적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동안 의료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매진한 덕이 크다.

어려서부터 무엇을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엄청난 학습 부담을 지고 가야하는 의과대학 시절에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안, 특허 출원을 하는 '아이디어 맨'이었다. 원터치 플러그 콘센트, 분말약분배기등 특허 등록이 된 아이템만 서너 개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템은 하나도 사업화되지 못했다. 원래 "만개의 특허 중 한 개가 제품화가 되고 제품화된 것 만 개중 한 개가 성공한다"는 업계의 격언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또한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실제로 그 아이디어를 제품화하여 판매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사업화를 위해 국내 유수의 기업과 여러 차례 접촉했지만 "의사선생님이 진료나 하시라"는 충고와 함께 문전 박대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무영 헤드램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업을 시작한지 5년, 김기천 대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바로 앞에 있어도 그것에 자금을 투입해 사업화를 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사업화 도중 발생하는 수많은 난관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정의학과 원장에서 의료기전문 CEO 변신

의사로서 그의 전공분야는 가정의학과였다. 가정의학과 의사로서 그는 환자의 귀와 코, 그리고 목 부분을 자주 봐야 했다. 김 대표는 그때마다 기존의 헤드미러와 헤드램프에 만족하지 못했다. 헤드미러는 어두워서 환부가 제대로 안보이고, 헤드램프는 광원이 점광원이다 보니 기구에 의한 그림자가 생겨 만족스런 진료를 할 수 없었다. 결론은 헤드미러와 헤드램프의 장점을 모두 갖는 이중광원 무영헤드램프였다. 진료 중 틈틈이 시간을 내 이러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시작품을 만들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개발비가 문제였다. 공동개발을 위해 아이디어를 가지고 몇 개 업체를 찾아갔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결국 혼자 자금조달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모두 남의 일이었다. 몇 번에 걸쳐서 정부에 사업자금 지원 신청을 했으나 심사관 입장에서 보면 "제조업에 문외한인 책상물림 의사가 무슨 사업을 하겠는가"는 의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자금 조달을 위해 또 다시 수년이 흘러갔고 병원 운영을 통해 꼭 필요한 자금이 만들어진 2006년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 창업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직원도 없었다. 설계와 개발, 구매와 제조는 물론 판매와 사후 관리 모두 혼자 해나갔다. 사업화 첫해 매출은 겨우 6천만원. 제조업 경험이 없다보니 그 와중에 제품의 품질에 계속 문제가 발생했고, 계속적인 A/S 비용과 문제점 해결을 위한 설계 변경이 수도 없이 필요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결국 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결국 창업 후 몇 번에 걸쳐서 자금난이 찾아왔던 것이다.
사업자금 융자를 받기 위하여 전세금을 빼내 집을 사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하고, 그래도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다시 병원을 개원하여 개원 자금 대출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중에도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바꿔주면서 지속적으로 품질 개선을 추구하기를 3년이 흘렀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제품의 편리성이 홍보되며 매출은 계속 상승세를 탔다. 창업 후 3년 동안은 "참으로 제조업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세월이었다. 이후 제품이 안정화 되면서 3~4년 동안 매년 100%의 매출 신장을 거쳐 현재는 제품 라인업도 제법 다양해졌다. 노안 교정을 위한 확대경과 수술용 현미경 등이 추가 됐고 초기 제품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성능으로 발전했다.
이제는 '닥터킴'의 제품은 전 세계 최고의 성능임을 자타가 인정, 서울대학교 병원을 비롯해 국내 대형병원에 연이은 납품은 물론 의료기기 선진국인 미국, 일본, 독일 등에 수출해 극찬을 받고 있다.

또한 2007년 '세계 특허청 사무총장상'과 2009년 '의료인 대상 아이디어 공모 우수상', 2010 '발명의 날 특허청장상' 포상 또한 받았다.
2008년 일본 전시회 참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30여차례의 해외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쳐 약 1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중이다.
“앞으로도 닥터킴은 세계 최고의 제품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더욱 높이도록 노력하겠다"는 김기천 대표의 말에서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이연희 기자 sqsm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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