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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03 12:04
유정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476  



세계 12의 경제대국이 이룩한 급성장, 그 이면을 들추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한국경제의 고속성장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요즘 다시 박정희 정권 때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는 이면이 있고, 그 이면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판단에 근거해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유정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의 대담은 우리경제의 성장경험에 대한 재조명 및 새로운 해석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의 경제성장, 그리고 그 이면
‘동아시아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의 경제발전은 관치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평가가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유정호 교수의 견해이다.
우리경제의 성장을 견인했던 1960년대의 수출증대는 관치 때문이 아니었고, 관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정책은 성장을 둔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경제가 ‘기적’을 이뤘던 데에는, 우리경제의 공업화 초기에 세계시장의 규모가 서구 선진국의 공업화 초기에 비해 100배 이상 컸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해석한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위해서는 관치의 잔재를 청산함으로써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첩경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래야 우리경제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속성장이 관치의 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유사 이래 가장 강력한 정부였던 박정희 정부 아래 이뤄졌기 때문인데, 고속성장이 있었다는 것은 그때까지 우리 경제에 발휘하지 못한 잠재력이 있었음을 의미하며 그 발휘를 막는 장애요인이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그 장애요인이 제거되면서 고속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이 유정호 교수의 견해이다.
예를 들면, 6.25전쟁 발발 직후 우리정부는 미국정부와 UN군에 원화를 빌려주고 달러화로 돌려받는 협정을 맺게 되는데, 그 후 정부는 1950년대 내내 저환율 정책을 유지했다. 환율이 낮을수록 돌려받는 달러 액수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수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되었으며, 우리 수출은 이 장애가 1960년 2월부터 1961년 2월까지 세 번의 평가절하를 통해 제거되고 환율이 현실화된 직후 폭발적 팽창을 시작한다. 그 후 1964년부터 정부는 발전전략을, 수입대체를 통한 공업화에서 수출촉진을 통한 공업화로 바꾸고 본격적인 수출촉진정책을 펴게 된다.

중화학공업정책의 허와 실
1970년대 중화학공업정책은 대표적 관치의 예인데, 많은 이들이 그 덕으로 우리 제조업이 발전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매우 피상적인 관찰이라는 것이 유정호 교수의 설명이다. 긍정적인 효과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중화학공업정책은 철강, 비철금속, 전자, 화학, 일반기계, 조선 등 여섯 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세금 감면, 마이너스 실질 금리의 대출 몰아주기, 외국 경쟁품 수입제한 등의 특혜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 정책은 산업에 관해 차별적이었으며 그 때문에 결국 우리경제 전체의 성과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수출촉진정책 아래에서는 어느 산업이든 수출성과를 내면 정부 지원을 받았지만, 중화학공업정책 아래에서는 육성 대상이었던 여섯 개 산업에 속한 기업만 특혜를 받았고 경공업에는 그 혜택이 전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중화학공업에 투자가 집중되었는데 그 특혜는 공짜로 생긴 것이 아니라 경공업들이 대가를 치룬 것이다. 즉, 중화학공업에 세금이 감면된 만큼 경공업에 대한 세금은 증가했고, 중화학공업에 대출이 증가한 만큼 경공업에는 줄었으며, 수입제한으로 높아진 중화학공업 제품의 국내시장 가격을 지불해야하는 기업들은 경공업 기업들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당시 우리 수출을 주도하던 경공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세계시장 점유율이 하락했다. 이는 결국 1979년 실질수출의 감소를 가져왔고 그와 함께 투자도 감소해 우리경제는 1980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와 발전단계, 자연자원, 특히 수출상품구조 등 여러 측면에서 가장 유사한 특성을 가진 대만과 비교해보면 사정은 더욱 분명해진다. 대만의 경우 우리와 같은 차별적 중화학공업정책을 실시하지 않았으되 중화학공업이 발전했으며, 1970년대 말 우리 수출처럼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이나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중화학공업의 발전은 대만의 경우나 우리의 경우나 모두 높은 투자율로 자본축적이 빠르게 이뤄진 결과다.
과거의 관치 아래 우리 제조업은 기업의 개체수보다는 규모가 증가함으로써 성장했으나 대만의 제조업은 기업 수가 증가함으로써 성장했다. 우리경제가 1997년 말 IMF경제위기를 맞았던 것 역시 관치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점하고 있던 재벌기업들의 부실이 경제위기의 대내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대만은 경제위기를 맞지 않았다. 우리 경제에는 대기업 및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 문제가 계속해서 난제로 남아 있다.
현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의 보호·육성이 아니라 개인과 개별 기업이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 즉 정부나 힘센 자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누구든지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의 마련이라고 유정호 교수는 주장한다. 또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바로 이런 나라이며, 이런 환경은 정부가 모든 개인과 기업들의 자유와 재산을 공정·투명하게 보호할 때 마련되는데,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보호는 바로 정부의 존재이유이자 의무이며, 또 이보다 정부가 경제를 위해 할 수 있는 더 중요한 일이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정재헌 기자 jjh052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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