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예술

 
작성일 : 10-12-24 10:57
일랑 이종상 화백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606  



살아있는 한국 문화의 심지


일랑 이종상 화백은 우리 전통 문화의 맥을 잇고 중흥을 이루기 위해 누구 못지않은 노력과 피땀을 흘린 예술가다. 이종상 화백은 재학생 시절부터 서슬 퍼런 독재시대에 시대정신을 개척해놓은 민중미술과 한국화의 맥을 구축, 독도에 문화 심기 운동을 전개하며 문화의 사회적 효용을 이뤄냈다. 아울러 루브르박물관 전시와 화폐 화가로도 널리 알려진 이 화백을 만나 한국 미술과 우리 역사에 대한 철학의 고찰을 시사 받는 깊이 있는 시간을 가졌다.


<독도(獨島)-기(氣)II>, 1982, 순지(純紙)에 수묵, 89X89cm.


철학 속에 피어난 화폐 초상화
‘돈을 그린 화가’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종상 화백은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작가다. 본래 화폐에 들어가는 그림은 연륜이 있는 작가가 그리는데, 이외의 조건 역시 까다로워 투기나 부채, 국세체납 등의 금전적 오점이 있으면 절대 그릴 수 없다. 또한 돈과 작가의 이미지는 평생 함께 가기에 지폐가 통용된 후 작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화폐는 모두 폐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 화백이 처음 오천원권에 율곡 이이를 그렸을 때 30대 중반이었으니 그 이후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된다.
그리고 그가 수십 년이 지나 오만원권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그려 500년만의 뜻있는 모자 해후를 이뤄낸다. 신사임당의 임종 순간 남편과 아들이 곁에 없었는데 훗날 화폐에 자리 잡아 지갑 안에서 모자상봉을 시켜줬으니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돈에 철학을 그려 넣은 화백으로서 그는 화폐를 물욕의 대상을 넘어 정신과 생명력이 깃든 존재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돈을 사랑하고 각 나라의 돈에 담긴 문화와 목적을 이해하라고 역설한다. 그는 또, “돈은 그 나라, 그 시대의 문화가 최대 역량으로 응집된 메모리칩”에 다름 아니라고 했다. 이종상 화백이 화폐 속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을 그리게 된 배경은 돈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어긋남이 없는 삶의 길을 걷고야 마는 꼿꼿한 성정 때문이었다.


독도의 문화가 있기에 우리는 이미 독도 주민이다
국민들에게 독도를 지키는 운동이 활성화된 것은 몇 해 되지 않았지만, 이종상 화백의 ‘독도 문화 심기 운동’은 이미 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77년, 이 화백은 독도를 상징하는 문화적 요소가 없음을 파악, 지금보다 출입 절차가 어려운 독도에 들어가 독도를 그렸는데, 그 때 이미 경제가 성장하고 시기가 정돈되면 일본이 독도에 대한 주장을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문화가 없으면 무주지(無主地)와 다름없기에 독도 문화의 첫걸음으로 지도의 어버이격인 ‘독도진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다방면의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활동으로 독도를 지키는 것이 문화적 책임감이라 표현했다.
1977년부터 그는 매해 독도의 같은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이를 본받아 독도 문화 심기 운동에 참여하는 문화인과 단체가 늘었다고 한다. 이 화백은 독도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청정한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독도를 정복하려는 욕구를 버리고 자연 속 독도가 인간의 존재를 받아준다는, 겸손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찾아야 풍랑 없이 독도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독도를 지키는 과정에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교감하는 이종상 화백의 기개에 탄복을 자아내게 된다. 


<남산에서>, 1978, 화선지에 수묵 담채, 110x67.5cm.



긴 세월 맥을 이어가는 민족의식
이종상 화백의 수많은 일화 중 역사의식을 크게 드러낸 루브르박물관 전시 때의 일은 한동안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며 우리 문화재에 눈길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병인양요를 주제로 한 72m의 거대한 벽화를 루브르박물관에 전시했는데 전 세계 127만 여 명의 엄청난 관람객이 찾아왔고 박물관에서 영구전시를 요구하며 거액을 제시했단다.
하지만 그는 금전적인 거래를 거부하고 과거에 프랑스가 조선으로부터 탈취해 간 규장각 도서와 직지심경의 반환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박물관 측이 정치적 문제라며 난감해했고, 이 화백은 “이는 내 문화적 자존심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보고 싶으면 한국에 와서 보라”고 딱 잘라 말하며 작품을 한국으로 가져왔다. 이 일화는 물욕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를 지켜내고 후세에 남겨주려는 그의 숭고한 결벽성이며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일이다.
더불어 이종상 화백의 사회적 신념 역시 선지적 행로를 가고 있었음을 말할 수 있다. 환경 보호보다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난개발이 진행되던 70년대부터 자연의 훼손을 우려한 그는 문화로 자연을 지켜내려는 신념을 화폭에 옮긴다. 당시 그의 작품을 보면 수려한 풍경화에 이질적인 느낌의 아파트와 기차, 고압전선 등이 그려져 있는데 서울의 난개발을 고발하고 있는 남산시리즈 연작활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사람들은 작품에 담긴 고발의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현재에 와서는 민중미술의 암시로 또, 환경보호의 효시로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이렇듯 자연에 대한 신념을 토로하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그가 재학생 시절 국전에서 특선한 ‘작업’과 같은 작품은 대장간 노동자의 열기 넘치는 현장을 그려냈다. 실제로 그는 화선지 값을 벌기 위해 노동자들과 일하며 현장을 느꼈다. 그는 평등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약자들의 실제적 모습을 작품에 담는 소신을 꺾지 않았고 그 소신은 노동을 통한 민중 미술의 씨앗이 되었다.
당시 군사정권 하에 위험할 수 있었던 민중의 노동현장을 통한 소재로 정한 계기를 물었는데 이 화백은 4.19 혁명 때 선봉장에서 민주화에 앞장섰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혁명의 와중에 부상과 수배를 당하는 등의 고초를 겪었고 시간이 흘러 국가 유공자로 표창도 받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민주화 운동 중에 사망한 동료들에 대해 살아 있음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들이 살아남았다면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할까?’라는 의문이 자꾸 내면에서 메아리쳤다. 그래서 올바른 사회에 대한 이념을 굽히지 않고 사회와 소통하는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그 책임감을 채워냈으며 그가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기본에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는 목적도 그와 같다. 


 
미학과 철학으로 후세의 길을 비추는 선구자
이 화백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의 이름을 걸고 미술관을 건립하고 싶어 하는 지역이 많은데 그는 일랑미술관의 예정지를 인천으로 정했다. 루브르박물관 전시로 화제가 된 병인양요는 인천 강화에서 있던 역사적 사건이었고, 자신의 미학적 역사에서 작품의 고향이 인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종상 화백. 현재 인천시와의 계획 단계에서 널찍한 양지의 땅은 인천 시민 출신 화가들을 위한 시립미술관 건립에 쓰이길 원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관은 불모지의 폐석산을 달라고 했다.
그는 미술관에 대형 벽화를 제작, 굴에서 물이 떨어지는 대로 동유화로 만들고 그 물이 얼면 고드름이 생기는 자연과 함께 건립하는 미술관을 꿈꾼다. 그래서 인천이 옛 제물포의 찌든 모습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랜드마크인 미술관을 보유한 국제도시로 탄생하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그는 현재 미술관 건립 진행에 음양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는데 미술관 하나 없는 인천시에 이 화백의 혁신과 진심이 담긴 미술관이 생긴다면 동북아의 인천, 아니 세계 속의 인천으로서 문화의 질적 향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80년대부터 학생들을 가르친 이 화백의 교육자로서의 포부는 벽화에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는 벽화과가 단 한 곳도 없다. 국내에 벽화 전문가가 이종상 화백뿐이기에 그는 벽화대학원을 세워 건축을 이해하고 재료 기법과 예술성을 통한 보존보수학을 비롯한 예술과 과학의 통섭으로 높은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자신이 건재할 때 많은 것을 나눠주고 싶다는 그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선구자적 기질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이 화백은 짧고도 강한 철학을 시사했다. 자신이 어느 경지에 올랐다고 자만(自慢)하면 태만(怠慢)해지고, 그 게으름의 결과로 거만(倨慢)해지며, 오만(傲慢)해져 그릇된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오만함 다음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이 화백의 질문에 골똘해지자 그는 기만(欺瞞)이라고 설명한다. 남의 눈을 속이는 데까지 가는 과정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만(慢)의 한자에 담긴 마음 심(心)을 다스려 살자는 철학을 건네줬다.
우리 문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거장 이종상 화백의 철학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깨우침의 경종을 울리고 있는 현재와 숭고함으로 구축될 미래에 그의 행로에 큰 기대를 건다.

안상미 기자 orbit1983@nate.com


   
 

 
 
 

 

 

기획포커스컬럼

 

커버스토리

 

정치경제 문화
교육예술사회

 

서울부산인천
대구광주울산
대전충남충북
전남전북경남
경북강원경기
제주

 

CEO인사말조직도
인사찾아오시는 길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