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터뷰 – 조연승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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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조연승의 작업
  • 자기충족의 단자로서 세계
    강 선 학(미술평론)
    가로세로 4mm의 작은 오브제를 네 겹으로 화면 가득 부착하면서 생기는 반복과 차이야
    말로 운동을 생성하는 방법이자 세계를 읽어내는 시선이기도 하다. 캔버스의 스케일에 따라
    적당한 원거리에서는 원으로 보이고, 적당하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물리적 크기와 형태가 원래
    의 방형(方形)을 여실하게 보인다. 거리에 의한 시각적인 착각과 환영은 옵티컬 한 이미지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법의 하나이지만 조연승에게서 그것은 옵아트에서 목격되는 이미지 착오나
    환영이 아니라 한 이미지가 생성하는 세계의 양면성이다. 사각이 원으로, 입체가 평면으로, 색
    상들의 병치가 단일한 인상의 색상으로 중첩 순환되고 이동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힘으로 생
    성하는 방법의 정밀함에 주목하게 한다.
    검은색과 흰색, 회색 혹은 분홍과 붉은색,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화면은 일견하기에 한국
    회화의 특색으로 꼽는 단색화 일종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단일 색으로 구축된 것이 아니라 다
    양한 색상의 혼요, 색상의 병치로서 단색조의 특징을 보인다. 단색화가 아니라 단색조 회화라
    지칭하는 것은 단색화와의 일정한 거리 인식이야말로 그녀의 특성을 선입관 없이 읽히게 하기
    때문이다. 단색화 대가들의 외형을 닮은 듯하지만, 이들과 형식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
    고 있으며 읽어야 할 내용 또한 다르다. 색상을 드러내는 방법에서 칠하기가 아니라 구축하기
    이며 사각이라는 독특한 모듈을 이용한 색상의 배치, 색의 병치에서 드러나는 색상이라는 점
    에서 다른 지점을 가진다. 그렇다고 광학적인 색상이용을 방법으로 삼았던 점묘화의 경향이나
    이해와도 다르다.
    정상화 선생의 작업과 닮은 점이 없지 않지만, 그의 작업에서는 금속성의 예리하고 감각적
    인 반응을 만들어내는 엣지(edge)의 날카로운 표현이 있다면, 그녀의 작업은 사각 점이라는
    투박한 붓질이 요철로 부착된다. 요철로 부착된 색 점들의 병치의 불규칙한 구축 효과에 의해
    서 드러나는 이중성에서 훨씬 갈라선다. 가로세로 같은 크기의 입방체들이 한 화면에 구축된
    다는 면에서 반복적이고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 자기복제의 형태들이다. 반복은 대체로 규칙적
    인 리듬을 낳기 마련인데 그녀에게서 반복은 도리어 불규칙하고 자유롭다. 병치라는 방법에서
    규칙성을 보아낼 수 있다면 구축된 결과에서는 불규칙한 리듬이 밀도를 가지고 드러난다.
    이 불규칙은 리듬과 차이를 생성한다. 같은 크기의 반복이 밀착의 과정에서 높낮이의 차이
    를 생성하고 입체와 평면이라는 시각적인 차이를 구조화한다. 이 구조의 이중성은 현실태와
    잠재태라는 이중성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관계된다. 그것은 거
    리의 문제이자 통상적인 그림 보기의 거부이기도 하다. 적당한 거리로 보아내야 하는 일반적
    이고 상투적인 그림 보기에 대한 역설인 셈이다. 또한, 화면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요철의 높
    낮이와 바라보기의 거리가 시선의 차이와 함께 평면과 입체라는 상반된 성격을 한 화면 안에
    서 가능하게 한다. 보는 이와 화면의 거리는 단색과 단색조의 이중성, 현실 가능성으로서 잠
    재성에 대한 지각과 이해를 동반한다.
    단일 색상일 경우 시선의 각도에 따라 요철이 만드는 음영, 자신이 자신을 만드는 물적인
    특성이 드러내는 음영의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이동한다. 그 지형이란 질감이
  • 2 – 자 물적인 특성이며 촉감적 이미지로 세계를 사유하는 것이다. 특히 비규칙적인 반복은 반복
    의 리듬이 아니라 현실과 잠재의 이중적 운동을 생성한다. 반복이라는 리듬에 충실하기보다
    밀착과 접근이라는 정지의 인상과 변화의 인상이 공존하는, 증식이 아니라 병존하는 세계, 리
    듬보다 도리어 자기 충족성으로 가득 찬 세계를 읽어내는 일이다. 밀착해서 화면을 더듬어 나
    갈 때, 그것은 멈칫거리게 하고 흐름과 리듬보다 촉감적 느낌으로 이어지고 다른 세계, 평면
    과 입체의 접면으로 이루어지는 효과로 이끈다. 점처럼 박힌 색상의 고정된 이미지는 병립 혹
    은 병존, 병치의 구조와 함께 단색에서 단색조로, 완강한 평면성의 인상, 점들이 견고하게 밀
    집된 요지부동의 이미지에서 운동으로 이동하게 한다. 이 이미지는 제자리에서 각자로서 빛난
    다. 혼색의 효과나 광학적인 상호작용에 의한 색상의 연출도 아니다. 착란 현상도 없다. 물리
    적 자기 깊이만 있다. 오브제로서 부착된 높낮이가 그것이다. 그저 자기충족적인 점, 색들이
    다. 외부가 필요 없는 자기 생성이다. 사유의 재현이나 체험의 재현에 연연하지 않은 물성 자
    체의 사유이다.
    자신의 면적에서 색칠이 만드는 감정이나 붓의 기복이나 농담의 차이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말하자면 감정이 배제된, 기분이나 대상의 재현이 불가능한 색칠이다. 작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색 점일 뿐이다. 색상과 형태에서 작가가 철저하게 배제될 수밖에 없는, 주
    체 없는 구조다. 개별자에 충실할 뿐, 그 표현에 감정을 주입하거나 대상의 형태나 재현이 들
    어설 자리가 없다. 4mm의 공간에서 색상도 형태도 변화 불가능한 자기충족의 단자로서 있게
    된 요인들의 병치가 만들어내는 세계, 자아의 개체성과 전체라는 세계의 구성은 그렇게 있을
    뿐이다. 그것들이 모여 있을 뿐, 어떤 사건도 어떤 형태도, 어떤 형상이나 이념의 관계를 구축
    하지 않는다. 그의 색과 오브제는 체험을 재현하기 위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거기 있
    는 것으로 충족되는 화면이다. 그녀가 느끼는 세계다.
    “들뢰즈에게 예술은 그 감각적 형식을 통해 근본적으로 감각의 조건 자체라 할 실재하는
    잠재적 힘force의 장(場) 혹은 힘들의 생성의 장을 지각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의
    진정한 역량은 형태 혹은 형식의 창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태 발생을 추동하고 형태가 다
    시 잠겨들어 가는, 예술의 표현 재료와 힘이 식별되지 않는 혼돈의 장이자 진정한 생성의 장
    인 카오스모제chaosmose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즉 예술은 형태의 표현이나 체험된 것의 재
    현이 아닌, 형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들-이제껏 지각할 수 없었던, 다시 말해 감각의 문
    턱을 넘어서지 못했던-을 표현하는 것이다(형태는 이 힘들의 ‘어떤’ 생성이다). 바로 이 힘이
    우리를 감응시키고, 동시에 감응하는 우리의 능력을 변화시킨다”1)고 예술에서의 재료가 만드
    는 생성의 힘을 제시한다.
    조연승의 작업은 적당한 거리를 지키면서 화면을 보아나가는 산책자의 시선으로 다가갈
    때와 작품과의 거리를 가능하면 근거리로 밀착해서 볼 때, 완연하게 다른 세계와 어법을 목격
    하게 된다. 밀착해서 손에 잡힐 것 같은 질감으로 드러나는 촉감적 어법과 적당한 거리에서
    보는 평면성이 교묘하게 자신을 현실과 잠재로, 구체와 추상 사이를 순환하게 이미지의 이동
    을 추동한다.
    현실태와 잠재태로 거리에 따라 순환되는 특징은 조연승의 작업을 읽어내는 중요한 주의
    점이다. 입체감을 이루는 작은 오브제가 만드는 색상들은 적당한 거리에서는 입체적인 오브제
    가 아니라 평면을 색 점으로 드러낼 뿐이며 그것이 현실태가 된다. 그런데 밀착해서 보는 오
    1) 안 소바냐르그, 이정하 옮김, 들뢰즈와 예술, 열화당, 2009. p.316
  • 3 – 브제의 입체적 촉감들은 평면을 잠재태로 만들어낸다. 이 두 운동의 사이에서 그의 작업, 이
    미지를 만들고 이미지를 읽는 양면성의 운동감, 운동이 만드는 변화 생성을 구축한다. 잠재적
    힘의 드러내기, 그것이 아마 조연승의 작업이 가진 덕목일 것이다. 잠재적 힘, 잠재태의 세계
    는 현실의 바탕, 현실에서 드러나지 않는 침묵이지만 언제나 현실과 짝을 이루는 속성이다. 그 속성의 각성이야말로 그가 보아낸 세계이다. 어떤 개념에도 의존하지 않고 물질로서 사유
    를 추동하고 감각을 통해 세계를 만나는 힘이 그가 보여주는 화면이다. 힘의 생성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그녀의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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