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화분에서 피어난 시, 이 효 작가의 이야기
삶이 시가 되어, 시가 삶이 되다” – 이 효 시인의 이야기 시사인터뷰 서현주 기자
2024년의 어느 겨울, 폭설로 가지가 부러진 공원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이 효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적 삶의 무게를 되새긴다. 올해 황진이 문학상 본상을 수상하며 받은 기쁨도 잠시, 그는 나뭇가지처럼 묵묵히 그 무게를 견디는 삶을 떠올린다. 이는 단순한 문학상의 수상이 아닌, 긴 세월 동안 그의 삶을 지탱해온 뿌리 깊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첫발을 내딛다: 시와의 운명적 만남
이 효 시인의 문학적 여정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따라 우연히 참가한 K대학교 백일장에서 시작되었다. 상을 받아야 할 친구 대신 그가 뜻밖의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이는 글쓰기를 향한 운명적 출발점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또래 중 가장 빨리 결혼했으며, 자유로운 고향집과 달리 시댁의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자신의 영혼이 점차 시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글은 그를 지탱하는 조용한 힘이었다.
삶 속에서 배운 문학의 자양분
서울 아가씨였던 그는 직장을 다니며 주말마다 시부모님과 함께 포도농사를 지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배를 타고 내려온 피난민이었던 시아버지로부터 세상의 험난함과 삶의 지혜를 배웠다. 가계가 번창하기까지 부모님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을 온몸으로 익히며, 그는 자연과 삶을 가꾸는 법을 터득했다.
이 모든 경험은 그의 문학적 뿌리가 되었다. 자연과 땅,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얻은 이야기는 단순한 교과서의 지식이 아닌 삶의 진리를 시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묵묵한 노력의 결실
결혼과 직장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8년 동안의 습작 시간을 통해 내공을 쌓았고, 2021년 신문예문학회를 통해 문단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매일 시를 필사하며 자신을 단련했고, 마침내 2022년 첫 번째 시집 “당신의 숨 한 번”을, 2024년에는 두 번째 시집 “장미는 고양이다”를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는 다수의 동인지에도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대한문인협회의 “들꽃처럼”, 노원구 문인협회의 “사진 속 숨비소리”, 도봉구 문화원의 “도봉열전”, 오선출판사의 “국내문학상 수상작품집” 등이 그의 이름을 함께 빛냈다.
문학적 철학: 시인의 소명
그의 시는 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나는 어떤 시를 쓸 것인가?”
이 효 시인의 작품 세계는 나와 가족,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화려한 수입 꽃처럼 도도하고 눈에 띄는 시가 아니라, 소박한 화분처럼 서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 무너져가는 담장 위에 희망의 작은 화분 하나를 올려놓고 따뜻한 햇살을 나누는 시를 꿈꾼다.
그는 불의에 저항하는 시, 소외된 이웃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라고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시를 쓰고자 한다. 그 속에는 자신의 삶에서 얻은 진솔한 경험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담겨 있다.
미래를 향한 다짐
2024년 황진이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이제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제2의 인생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번쩍이는 시어들을 갈고닦아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시를 쓰겠다”는 그의 다짐은 여전히 뜨겁다.
두 번째 시집 “장미는 고양이다”를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적 세계를 선보인 이 효 시인은 삶이 곧 시가 되고, 시가 다시 삶이 되는 순환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 작은 화분에 담긴 희망처럼, 그의 시가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새로운 힘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효 시인 약력
신문예문학회 등단
대한문인협회 회원
노원문인협회 회원
한국신문예문학회 회원
아태문인협회 이사
인사동시인협회 사무국장
제3회 아태문학상 수상
제1회 서울시민문학상수상
제24회 황진이문학상 수상
시집 『당신의 숨 한 번』
『장미는 고양이다』
장미는 고양이다 / 이효
그 사실을 장미는 알고 있을까
앙칼스러운 눈빛, 날 선 발톱, 애끓는 울음소리
고혹적으로 오월의 태양을 찢는다
지붕 위로 빠르게 올라가 꼬리를 세운 계절
고양이 모습은 장미가 벽을 타고 올라
왕관을 벗어 던진 고고함이다
때로는 영혼의 단추를 풀어도
찌를 듯한 발톱이 튀어나온다
왜 내게는 그런 날카로운 눈빛과 꼿꼿함이 없을까
내 심장은 언제나 멀건 물에 풀어놓은 듯
미각을 잃는 혓바닥 같다
고양이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눈빛은
장미의 심장과 날카로운 가시의 고고함이다
고양이는 붉은 발톱으로 오월의 바람을
川 자로 할퀴고 간다
장미의 얼굴에는 오월의 핏빛이 칼날 위에 선다
나는 오월의 발톱을 기르고 있다
크레센도 / 이 효
봄은 악기다
누군가 몸에 구멍을 뚫어주면
세상을 향해 피리를 분다
자칫 상처 난 영혼이
악기를 다듬으면
노래가 아닌 독침毒針이 되어
한순간 “휙” 태양을 쏜다
대나무 숲에는 무장한
푸른 날개의 군인들이
봄의 지휘봉을 기다린다
나무라 불리지 못한 것들
풀이라 불리지도 못한 것들 위해
직선의 생명을 일으켜 세워라
크레센도, 꽃이 피어오르게 피리를 불어라